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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나눔화개골 설송식당 연말 취약계층에 온정 하동군 화개면 소재 설송식당을 운영하는 이명재 대표가 지난해 연말을 맞아 저소득 취약계층에 전해 달라며 170만원 상당의 10kg들이 쌀 50포를 기탁했다. 이명재 대표는 화개면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20년 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년 전부터 주변 어려운 이웃 돕기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설송식당은 화개골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TV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됐으며, KBS ‘6시 내 고향’에는 4회나 소개된 유명한 맛집으로 화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명재 대표는 “약소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 위기가정 등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귀은 면장은 “올해도 잊지 않고 연말 어려운 이웃을 향한 온정을 베푼 설송식당 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기탁한 쌀은 저소득 취약계층에 잘 전하겠다”고 밝혔다. 화개 휴심사, 제주 감귤 3개 복지시설 전달 화개면 소재 휴심사(주지 벽암·신도회장 한재천)는 지난달 20일 연말을 맞아 섬진강사랑의집, 하동장애인 재활보조작업장, 하동 우리들병원 등에 제철 과일 드시고 건강하고 활력 있게 생활하시라는 의미를 담아 제주 감귤 10kg들이 40상자를 전달했다. 휴심사는 2023년 한해에도 화개면에 햅쌀과 과일 등을 4회에 걸쳐 총 가액 2,500만원 상당의 온정을 전달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리이타(自利利他) 자비행(慈悲行)을 행하는 모범 사찰로 지역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다. 벽암 스님은 “늘 하심, 나눔, 배려를 위해 신도들이 시주하는 모든 금품의 5%를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환원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찰로 이끌면서 모든 중생의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정진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악양면지역사회보장協 어르신에 목욕 쿠폰 하동군 악양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공동위원장 강향임·황재복)는 연말 면내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무료 목욕 이용 쿠폰을 지원한다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이 사업은 겨울철 목욕 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악양면 복지목욕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 지원을 통해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돕고자 하동 아너소사이어티 2호 박금자 씨의 지정기탁금으로 이뤄졌다. 이번 목욕 쿠폰은 총 4353매를 발행해 관내 거주하는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3매씩 제공됐다. 쿠폰을 받은 한 어르신은 “겨울철에는 농촌지역 주택 특성상 추워서 목욕 환경이 매우 열악한데 목욕탕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어 아주 기쁘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강향임·황재복 위원장은 “목욕 쿠폰 지원으로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협의체 위원들과 함께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악양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2023년 초부터 협의체 위원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취약계층 노후 전기시설 교체 및 소방시설 설치(30개소), 도배·장판 교체 등 주거환경개선(5개소) 사업을 추진했다. 진교면재향군인회 경로당에 율무차 후원 진교면재향군인회(회장 정준석·이경숙)가 지난달 20일 면사무소를 방문해 율무차 50상자를 기탁했다. 진교면재향군인회는 작년 연말에도 어려운 이웃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떡국떡을 기탁했는데, 올해도 연말을 맞아 소외된 이웃을 돕고자 회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율무차 50상자를 구입·기탁해 관내 경로당에 전달할 예정이다. 정준석 회장은“연말연시 쓸쓸하게 보내는 어르신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탁했으며, 따뜻한 율무차 드시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익교 면장은 “추운 날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 준 진교면재향군인회에 감사드리며, 훈훈한 마음까지 잘 전하겠다”고 밝혔다. 옥종면 익명 독지가 2명, 쌀·성금 기탁 연말연시를 맞아 하동군 옥종면에 이름 없는 기부천사들의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하동군 옥종면은 연말을 맞아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독지가가 70만원 상당의 10㎏들이 쌀 20포를 기탁했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또 다른 익명의 독지가는 ‘연말연시에 관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내용과 성금 100만원이 담긴 봉투를 면사무소에 전하며 이웃사랑을 베풀었다. 기탁된 물품과 성금은 옥종면 관내에 도움이 필요한 복지사각지대와 취약계층 세대에 고루 전달될 예정이다. 박규식 면장은 “자신들을 알리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아름다운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내 나눔 문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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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푸른 잎 이경숙봄에 나는 푸른 잎 이경숙 어른들 말씀으로 ‘봄에 나는 푸른 잎’들은 모두 약초이다. 오전에는 오가피 잎들을 따서 나물을 만들었다. 아직 연해서 순한 맛이다. 가시가 가득 있는 엄나무도 키를 키우더니 끝자리까지 잎을 달았다.엄나무는 키를 많이 키우면 나물을 채취하기 불편하니 키를 낮게 키우라고 뒷집 할머니가 가르쳐주셨다. 그런 가르침과 상관없이 올해도 나무는 키를 늘여 나를 힘들게 한다. 끝자리 가지를 뚝 분질러 가며 나물을 채취한다. 엄나무는 가지도 약용으로 사용한다. 백숙을 할 때도 가시가 있는 가지들을 잘라서 넣는다. 몇 년 전 회초리만한 엄나무를 사다 심었는데 벌써 담장을 훌쩍 넘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해마다 새로운 촉수를 내어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을 준다.텃밭 가장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머위 잎을 며칠 그냥 뒀더니 엄청 자랐다. 얼마 전 스텐으로 된 낫을 하나 샀더니 칼처럼 사용하기도 좋다. 입맛 없을 때 머위 잎으로 쌈 싸먹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낫으로 머위 잎을 베기로 했다. 종이 박스를 밭에다 두고 키가 자란 머위 잎을 베어 담았다. 저녁을 같이 하자며 시간 맞춰 나오라는 동생의 말이 생각나 정리하고 다듬는 시간도 없이 박스 가득 담아서 나갔다. 박스 가득 담겨 있는 머위 잎을 보더니 어머니는 금방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생각부터 하신다. ‘나도 좀 가져 갈 거예요. 잘라서 바로 나왔거든요.’ 나누어 먹는 일도 좋지만 힘들여서 채취 해온 게 갑자기 억울한 생각도 든다. 그러다 금방 마음을 푼다. 시골에 살면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며 사는 일이 행복한 일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인색해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나를 깨우고 간다. 아마도 바쁘고 힘들게 채취해서 종종 걸음으로 나온 게 좀 걸렸나보다.‘아, 그래. 좀 가지고 갈래?’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가지고 가서 아는 애 좀 주고 가려고… ’‘그렇게 하렴.’ 박스를 다시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아니, 조금만 있으면 돼요. 나누어 드세요. 금방 자라니까…’ 봄이 오면 나는 여기저기 나물을 나른다. 하동에서 많이 나는 취나물은 사서라도 나눈다. 오랫동안 그렇게 하다 보니 이 계절만 되면 으레 내가 챙겨주는 봄나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올해도 취나물을 나누어주고, 엄나무 순을 채취하고, 머위 나물을 베어서 나르고 있는 중이다. 나물과 함께 봄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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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 이경숙새로운 인연 이경숙 늦은 시간 울면서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십수 년 전 상담학회 연수를 다니던 시절에 알게 된 상담사이다. 올해 관공서에 주 1회 상주 상담사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연결이 되었다.‘선생님, 시골 계시니까 강아지 키울 사람 없을까요? 유기견을 돌보고 있는데…’ 우느라고 사이사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가야를 군산에 있는 사람에게 분양을 했는데… 아저씨가 미리 말 안하고 데리고 왔다고 화를 내는 바람에 키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꺼이꺼이 운다. 덩치는 산만큼 큰사람이 억울한 일 당한 유치원생처럼 운다. 참 난감하다. 꽃님이가 집을 나간 후 길가다 비슷하게 생긴 개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시절을 겨우 보냈는데. 마당가에 개집은 그대로 있는데. 이웃에 나누어 주고 남은 간식이 아직도 있는데. 장선생의 이야기를 귀로 듣고 있으면서 머리는 빠르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강아지 이름은 초롱이이고 암놈이란다. ‘암놈은 못 키우겠더라. 새끼를 낳으면 요즘엔 보낼 데도 없고 힘들어. 지난 번 우리 꽃님이도 중성화 수술을 했었어.’ 이렇게 대답하는 내게 초롱이는 이미 반쯤 우리집으로 오고 있는 듯했다. ‘어쩌지…’ 잠깐 고민하다가 울고 있는 장선생을 달래며 말하고 말았다. ‘울지 마, 내가 키울게’ 금방 기분이 좋아진 장선생이 울음을 뚝 그쳤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순진하고 귀여운 아가씨를 달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 참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미술을 전공한 장선생의 패션 감각이 남달라서 눈에 띄는 사람이라 강해 보이기만 했었는데…‘선생님, 예방 접종 다 시키고 중성화 수술해서 보낼게요.’ 그 후로 장선생은 초롱이의 사진을 간간이 보내고 있다. ‘어쩌냐, 그렇게 좋은 환경에 있다가 우리집에 오면… 우리는 마당에서 키워야 하는데’ 예쁜 옷을 입은 초롱이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이나 어미젖을 먹고 있는 모습들을 보내온다. ‘아니예요 선생님, 초롱이는 밭에서 태어났어요. 너무 귀여워서 제가 자꾸 안아서 그렇습니다.’유기견과 유기묘를 돌보는 후배가 있다. 하루 2시간 이상을 할애해서 먹이를 주고 병원도 데리고 간다. 처음 시작할 때 보다 지금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생겨 일이 조금 줄었단다. 마음 따뜻한 후배가 대견하다. 곧 우리 집에 올 초롱이를 기다리며 먼지 앉은 집을 손질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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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담그는 날 이경숙장 담그는 날 이경숙 ‘물 한 말에 소금 3되, 그 정도면 적당할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장 담글 준비를 한다.정월에 담지 못했다면 이월에는 장을 담그지 않는 달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삼월 삼짇날에 장을 담그기로 했다. 요즘에는 어른들의 이런 말씀과 상관없이 2월에도 담그고 자신들이 편한 날짜와 시간에 하는 사람들도 많다. 혼자서 한 번도 장을 담가 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일은 하시지 않더라도 지켜보셔야 할 것 같아서. 이번 메주는 또 다른 사연으로 내게 왔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메주를 사놓고 장을 담그기도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게 오게 되었다. 친구에게 맛있게 만든 된장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며칠 전부터 장독을 깨끗하게 씻고 물을 채워 우려냈다. 장을 담그기 전 장독의 물을 비우고 한지를 태우고 뚜껑을 닫았다. 연기가 독안을 채우는 일이 의식을 치루는 것 같아서 마음마저 경건하였다. 끓인 물을 부어 장독 안을 한 번 더 씻어 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 담그는 날을 미리 정하고 마음을 다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침부터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내가 준비한 건 좋은 물 두 말과 간수가 빠진 좋은 소금 6되였다. 먼저 소금을 물에 녹이기 시작했다. ‘옛날 소금엔 티끌이 엄청 많았는데 요즘엔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요즘엔 염전 시설이 좋아서 더 그래요.’ 달걀을 띄워 소금물의 염도를 체크하였다.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메주를 삼베로 만든 자루에 담아 장독에 넣었다. 소금물을 조심스레 장독에 붓고 메주가 떠오르지 않도록 누름돌을 얹어두었다. 메주가 소금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누름돌이 움직일 수도 있어서 대나무를 잘라 고정을 시키면 좋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잘 하시는 편이다. 이번에도 조금 덜 짜게 담고 조금 일찍 된장을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꼭 다른 사람들처럼 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한 번 해보자고 하신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봄날을 기분 좋게 보냈다. 올해 구순인 어머니는 지금 하시는 작은 일들도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내년에 다시 이런 시간이 올까.’ ‘너무 힘들면 그냥 사먹어도 된다. 힘든 일 하지 말고 살아라.’ 하신다.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작은 추억들이 아끼는 물건들처럼 우리에게 차곡차곡 쌓여있다. 헤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자꾸 뒤돌아보는 날이 많아지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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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반나절 이경숙꽃밭에서 반나절 이경숙 나뭇가지를 거꾸로 꽂아도 산다는 계절이다. 여기저기 꽃소식이 들린다. 오늘은 꽃밭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사천에 사는 친구에게서 능소화 줄기와 무궁화나무, 전정한 무궁화 가지들을 가지고 와 다듬었다. 삽수를 여기저기 꽂았다. 동생네도 나누어 주었더니 제 집이 무궁화동산이 되겠단다. 개량된 무궁화는 모양과 색상도 다양하고 진딧물도 예전 같지 않아서 좋다.지난해에도 무궁화나무를 많이 얻어와 꽃을 좋아하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네 입구에도 몇 그루 심었더니 꽃도 피고 키도 훌쩍 많이 자랐다. 외출을 하면서도 무궁화나무에 자꾸 눈이 간다. 가을에는 가지도 가지런히 잘라주었다. 이곳에 이사와 텃밭에 꽃을 심는 나를 보고 이웃 할머니들은 이상한 사람취급을 하셨다. 강둑을 따라 돌을 골라내어 밭을 만들고 콩을 심는 분들인데 멀쩡한 밭에 꽃을 심는 나를 당신들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꽃밭을 만들고 놀고 있으니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계신듯하다. 오늘은 봄꽃 모종 몇 개를 텃밭에 심었다. 웃자란 꽃 잔디 사이를 들추다 누워있던 개구리를 만났다. 깜짝 놀랐지만 밉지 않았다. 얼른 덮어주었다. 그런 나에게 뒷집 할머니가 상추 모종을 몇 개 뽑아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쪽 이랑에 심었다. 이웃의 불두화도 삽목을 하고, 뽕나무도 삽목을 했다. 금화규 씨앗도 넣었다. 잎이 나고 꽃이 필 것을 생각하면서 흙을 만지는 일이 행복하다. 꽃을 심고 남는 땅에는 고추도 심고 가지도 심고 호박도 심는다. 그런 채소들마저 내게는 꽃나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가지의 보랏빛은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운 색이다. 모든 색깔들은 자연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다. 자연을 닮고 싶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염색이 시작되고 그림이 생겨나고 자연을 응용한 디자인이 생겨났다면 지나친 말일까.흙을 밀치고 올라오는 푸른 잎들을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친구를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행히 내 주변에 형제나 아이들은 나무나 꽃들을 좋아한다. 6살 손녀도 수선화가 피어나는 걸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출 줄 안다. 무심한 듯 지나치던 작은 아이도 튜울립을 프로필 사진으로 넣어 둔 걸 보면 말이다.시골집에 사는 호사를 부릴 날들이 오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꽃들이 피고 과실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새들이 찾아와 재잘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침이면 마당에 나가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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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이경숙눈물 이경숙 어머니를 보내고 그 서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하동으로 달려온 친구가 있다. 어머니 이야기만 시작하려해도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한다. 당신의 병명도 모르고 계신 어머니를 남동생의 집에서 모시게 되었다. 대소변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되자 아들과 며느리는 손을 들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자신도 성하지 않은 몸으로 하루 세 시간씩 운전을 하며 한 달을 꼬박 다녔단다.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져 살아야 했던 친구는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고 그 감정은 쉬 정리되지 못했다. 이제 나이 들어 어머니를 이해하고 살갑게 대하자 어머니는 세상을 다 얻은 양 기뻐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발병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했다. 한 이틀 친구가 가지 못한 틈을 타 결국 남동생 부부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 시켰단다. 집에 계시다가 아무도 없을 때 돌아가실까봐 걱정스럽고 무섭다는 올케의 말을 듣고 동생이 입원시킨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경우 전화라도 해주었더라면 덜 서운했을까 하며 또 눈시울이 뜨겁다.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시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기 때문에 되도록 집에 계시게 하고 급하면 응급실로 모시고 가도록 하면 안 될까. 친구는 자신이 모시지 못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도 결정은 네가 하라고 했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몸으로 장시간 운전을 하고 다니는 친구가 걱정스러웠다. 차라리 집으로 모시고 오는 건 어떠냐고 이야기했더니 까다로운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고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는데 아들과 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보고 대소변을 받아달라는 것도 아닌데 집으로 모시지 못하게 하는 사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결국 병원에 모신 어머니를 친구가 드나들 수 있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자고 이야기 하는 사이 당신의 병명을 알게 된 어머니는 입원 2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실에서 어머니는 이미 정신을 놓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게셨다고 한다.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내게조차 연락도 하지 않고 장례식을 다 치른 후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동생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가고 싶다며 하동을 찾아왔다. 맘대로 울지도 못해 하동까지 달려온 친구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기 좋고 물 좋은 하동이 친구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살아야 하니 동생에 대한 감정은 비워버리고 오는 봄을 함께 맞이하자고 악양 들판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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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이경숙오지랖 이경숙 볕이 좋은 몇 일전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밭을 만들었다. 괭이로 낮아진 고랑을 파고 삽으로 흙과 퇴비를 여기저기 옮겼다.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남천의 곁가지에서 빨갛게 새순이 돋아나고 목련의 눈이 조금씩 부풀고 있다. 망에 넣어 실내에 보관하고 있는 알뿌리에서도 새순이 나와 있다. 모두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서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가까이 지내는 아이들 중에서 행동이 굼뜨고 융통성이 없는 아이들은 특히 몸으로 하는 일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토요마을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도구는 손’이라는 말을 자주해준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내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부모님이 안계시더라도 한 끼 식사는 본인이 해결할 수 있도록 부모들을 대신해 잔소리를 하는 편이다.중학생이 될 아이들이 내 사는 동네에 여럿 있다. 아이들은 인근 면에 있는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로 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은 우리 지역은 일하는 부모들이 많아 아이들이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기는데 어려움이 많다. ‘진주에 학용품을 구입하러 가는데 어디로 갈까’ 물어 보는 전화도 받았다. 열심히 주소를 찾아 전해주었다.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는 학부모를 대신해 보건소 건강검진도 데리고 다녀왔다. 학부모가 아닌 내가 데리고 가려니까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받아서 갔다. 결과서를 찾으러 가는 일도 내가 해야 하므로 아이들에게 위임장도 받아서 가지고 갔다.이 녀석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때 그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한 번쯤 떠올려 보기나 할까. 그렇지 않더라도 할 수 없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만날 때마다 사정하고 부탁하던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었으면 좋겠다.동네에 빈집은 늘어나고 주변에는 나이 드신 어른들 뿐이라 내 오지랖은 계절도 없이 발동이 걸린다. 혼자 사는 어른들의 잔심부름, 휴대폰의 사용법, 배터리 교환, 나오지 않는 TV를 살펴보거나 전화해드리기 등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들은 많다. 다행히 내 오지랖은 넓고 튼실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도 이웃의 가난한 산모에게 국간장과 미역다발을 나누고,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반찬을 나누어 주시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 때부터 내 오지랖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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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이경숙사이 이경숙 주말에 가서 뵌 어머니의 다리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보인다. 깜짝 놀라 만져보았더니 그 곳은 물집이 생긴 것도 모르고 계신다. ‘가려워서 긁었을 뿐인데 물집이 생기더라.’ 하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막내 여동생하고 같이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구순인데도 손수 음식도 하시고, 정신도 맑으시고, 기억력도 가끔은 우리보다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입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마음은 가볍게 지냈던 것 같아서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오늘도 암환자인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두고 면회도 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데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친구의 어머니는 병원에 있기 싫어 항상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잘 하셨다며 울먹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병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 인사도 못하고 가실까봐 불안한 친구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연로한 부모님의 거취 문제로 형제 자매간의 의견차이나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말들이 오고가는 경우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라면 문제는 조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60대라는 나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참 어려운 나이인 것 같다. 경제활동지대에서 벗어났으나 쓰임은 오히려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고,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이 있는 나이이다. 퇴직 후 내가 가져야 할 여유로운 시간도 중요한 나이지만 부모나 자녀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아들도 결혼을 하지 않은 아들도 나에게는 똑 같은 무게로 있다. 어떻게 살아가든 아이들의 몫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가는 마음이나 걱정이 두부모 자르듯 잘라지는 게 아니라서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아릿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 어머니에게 아직 나도 그런 존재로 남아있겠지. 내게 내 아이들이 그렇듯이.어제 다리에 생긴 물집 때문에 전화를 드렸더니 시골집이 춥지나 않은지, 혼자서 제대로 챙겨나 먹는지, 자식들 때문에 마음고생이나 안하는지 어머니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신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나이를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내 자녀들은 나를 노인네 취급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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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댁의 세상사는 이야기 전화 이경숙 시인·마을교사북천댁의 세상사는 이야기 전화 이경숙 시인·마을교사 ‘선생님, 제 마음 아시죠? 아이들은 샘한테 맡겨둘랍니다. 애들 엄마랑 나는 일 열심히 할테니까 샘이 우리 애들 좀 봐주세요.’ 발음이 힘들 정도로 술을 마신 결혼이민자 남편이 주말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다.올해 중학교 입학할 큰아들과 6학년이 되는 작은 아들, 두 아들을 둔 아버지는 요즘 드물게 아들들에게 존경 받는 아버지이다. 늦은 나이에 베트남 아내를 맞아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친구들이 좋아 매일 술을 마시고 다녀 아내를 힘들게 했다. 내가 교육을 가 있던 시간에도 그의 아내가 울면서 전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선생님 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왔어. 남편 매일 술 먹고 나 행복 없어. 힘들어. 아이들 불쌍해.’ 미숙한 한국어로 자신의 맘을 전했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교육 마치고 하동 가면 꼭 찾아갈거니까 울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그 시절 나는 결혼이민자들에게 소방관 같은 상담사였다.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처럼 그녀들을 안심시켰다. 우선 힘든 마음을 다독이고 무조건 그녀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남편들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녀들을 달래야 하는 궁극적인 나의 목표는 그들의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알아갔다.오늘 전화를 한 남편도 ‘내가 알아서 잘 한다.’고 여러 번 큰소리를 치던 사람이었지만 착한 사람이다. 조립식 주택 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또 사람을 좋아해서 술자리가 빈번한 사람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이 줄어들자 자신이 가진 기술로 회사원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큰아이는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고 한다. 이보다 더한 찬사가 또 있을까.큰아이가 5학년 시절에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수학성적이 너무 안나와요. 선생님이 좀 봐주실 수 없나요? 엄마 같은 마음으로 부탁드려요. 부모님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들었어요.’ 그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써 중학생이 된단다. 그동안 수학실력도 제법 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학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퇴직 후 토요마을학교를 하면서 학교와 초등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만나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해주고자 노력했다. 벌써 4년차다.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 행복한 시간도 많았고 지난해에는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있어 함께 슬퍼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작하려 한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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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댁의 세상사는 이야기 하동송림 이경숙 시인·마을교사북천댁의 세상사는 이야기하동송림 이경숙 시인·마을교사 하동송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동생이 있다. 지금은 방학 중이라 자주 다녀간다. 어제도 동료교사 2명을 데리고 그 추운 날씨도 마다않고 하동송림을 다녀갔다.하동송림이나 섬진강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아이에게 고운 눈빛만 줘도 그 사람이 고마웠던 것처럼. 내가 사는 고장의 자연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금방 등이라도 토닥거릴 수 있는 친구가 될 것 같다.지난주에는 동생과 하동송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하동포구공원까지 다녀왔다. 그 공원도 규모는 작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포구를 바라보고 있는 멋진 곳이라 좋아했다. 젊은 시절, 동아리 선배들과 기차를 타고 하동송림을 구경하고 섬진강 모래밭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나도 하동송림과 섬진강이 좋았다. 그 시절에 내가 이곳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의 유치원 시절도 초등학생 시절도 언제나 송림은 좋은 놀이터였고 소풍 장소였다. 내가 하동사람이 되고 친정어머니도 동생들도 하동을 좋아하고 송림을 즐겨 찾았다. 나무마다 숨어있는 즐거운 추억도 있고 서글픈 추억도 있다. 강가에서 속옷 차림으로 뛰어놀던 아이들이 벌써 어른이 되었고, 우리는 늙어간다.시간은 언제나 섬진강물처럼 흐른다. 그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또 사라져갔을까. 몇 백 년을 한 자리에 서서 지켜본 송림의 소나무들은 무엇을 보았고 또 무엇을 들었을까. 송림이 보이는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동생은 우선 하동에서 한 달 살기라도 해보고 싶단다. 퇴직을 하면 송림 가까이 와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무엇에 크게 감동을 하거나 호들갑을 뜰 줄 모르는 사람이라 그 좋아함이 진정으로 크게 느껴진다.자연은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한 때 위기도 있었지만 지자체의 관리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송림은 점차 회복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아침저녁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연의 품에 안겨 느끼는 행복이 삶의 격을 높이고 마음을 여유롭게 할 것이라 믿고 있다. 언제 찾아도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 줄 하동송림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잘 보존해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